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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사 류주현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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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사 류주현문학상

묵사 류주현 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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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사 류주현문학상 "여주가 낳은 묵사 류주현 선생은 한국 문학사에서 명실상부한 거목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류주현 문학상은 1984년 중앙일보가 제정한 국내 최초의 작가 명칭 문학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6회를 끝으로 잠시 중단되었으나, 여주문화원이 여주시와 협의하여 2005년 ‘묵사 류주현 문학상’으로 새롭게 제정하였으며, 2025년 현재 제21회에 이르는 유서 깊은 문학상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묵사의 문학은 인간 존재에 대한 신뢰와 역사적 정의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고 고뇌한 흔적입니다. 그의 작품에는 사회를 바라보는 치열한 작가 의식과 역사의식, 그리고 인간의 내재적 존엄성을 탐구하는 시선이 담겨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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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사 류주현 문학상 연보(역대 수상작)

류주현 문학상 수상작, 향토상 바로가기

묵사 류주현문학상


묵사 류주현문학상

• 1983년 중앙일보에서 ‘류주현문학상’을 제정.

• 1984년 제1회 류주현 문학상 김주영(金周榮) <객주(客主)> 선정.

 1985년 제2회 류주현 문학상 황석영(黃哲映) <장길산(張吉山)> 선정. 

 1986년 제3회 류주현 문학상 당선작 없음. 

 1987년 제4회 류주현 문학상 정연희(鄭然喜) <하늘사랑 땅의 사랑> 선정. <금환식>을 <북국설>로 개제하여 발간(전5권). 

 1988년 제5회 류주현 문학상 양귀자(梁貴子) <원미동사람들> 선정. 

 1989년 제6회 류주현 문학상 하근찬(河瑾燦) <작은 용> 선정. 

 1990년<대원군><파전무> 개판, 각5권으로 간행. 

 1992년 10주기 추모문집 <류주현연구> 간행. 

 2005년 여주군과 여주문화원에서 묵사 류주현문학상 제정. 

 2005년 제1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민병삼(閔丙三) <금관을 찾아서> 선정, 향토상 조헌(趙憲) <남한강 조적> 선정. 

 2006년 제2회 묵사류주현 문학상 김지연(金芝婚) <생명의 늪> 선정, 향토상 강태희(姜熙) <손님맞이 허수아비>동화집 선정. 

 2007년 제3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백시종(白始鐘) <물> 선정. 향토상 이일섭(李日燮) <침묵의 강> 선정. 

 2008년 제4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손장순(孫章純) <폭죽> 선정. 향토상 정기명(鄭起明) <출항일기> 선정. 

 2009년 제5회 목사 류주현문학상 김건중(金健中) <은행알 하나> 선정. 향토상 김문자(金文子) <강물에 빠진 달> 선정. 

 2010년 제6회 목사 류주현문학상 김용철(金容喆) <백제에는 근조고왕이 있다> 선정. 향토상 성흥환(成興煥) <고향은 날더러> 선정. 

 2011년 제7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정현웅(鄭賢雄) <그리고, 마루타에게 묻다> 선정. 향토상 박광태(朴光) <여강에 흐르는 세월> 선정. 

 2012년 제8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정소성(鄭昭盛)<설향> 선정. 향토상 홍은숙 <강가에 앉아 > 선정. 

 2013년 제9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한수경 <비너스의 서랍> 선정. 향토상 김흥열 <우포늪 가시연꽂>, 노혜봉 <봄빛절벽> 선정. 

 2014년 제10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김용진 <진실의 입> 선정. 향토상 유지순 <살맛나는 세상>, 유명은 <아무곳에도 없는 시간> 선정. 

 2015년 제11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김녕희 <시간의 비밀>, 엄광용 <사라진 금오신화> 선정. 

 2015년 제11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향토상 김지례 <꽃>, 김금자 <손수건과 여자> 선정. 

 2016년 제12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수상작 없음. 향토상 박덕균 <송전탑은 거기에 있었다>, 백경학 <기별이 가거들랑> 선정. 

 2017년 제13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최문회 <정약용의 여인들> 선정. 향토상 김세인 <동숙의 노래> 선정. 

 2018년 제14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정찬주 <단군의 아들> 선정. 향토상 진복순 <입춘> 선정. 

 2019년 제15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김종광 <조선통신사> 선정. 향토상 최동현 <신륵사 전탑> 선정. 

 2020년 제16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이상훈 <김의 나라> 선정. 향토상 안윤희 <며느리서까래>, 남지수 <하얗던> 선정. 

 2021년 제17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전진우 <그대의 강> 선정. 

 2020년 제17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향토상 지경숙<햇살이 마시멜로처럼 늘어지고 달달하게 될 때>, 이은희 <고사리 외 4편> 선정. 

 2022년 제18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정찬 <말없는 새> 선정. 향토상 임순례 <여름나기 외 4편>, 김응혜 <직립선언 외 9편> 선정. 

 2023년 제19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방현석 <범도> 선정. 향토상 조명순 <청국장외 13편>, 고은숙 <언어의 품격 외 6편>선정. 

 2024년 제20회 묵사 류주현문학상 오세영 <세인트 헬레나에서 온 남자> 선정. 향토상 류선율 <봄비>, 이혜숙 <십일월외 12편>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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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사 류주현 선생 연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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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21년(1세) 경기도 여주에서 류기하(柳基夏)씨와 구리곡(具理谷)여사 사이의 3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남. 조부 세열(世烈)씨는 항일운동과 성리학으로 이름이 높았음. 
  • 1922년(2세) 당시 의병대장이었던 할아버지를 검거하려는 일제의 감시를 피해 여주를 떠나 서울로 감.
  • 1928년(8세)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상계리(현재 서울 상계동)에서 할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움.
  • 1935년(15세) 앙주공립보통학교를 졸업. 그 뒤 집을 떠나 원산, 청진 등지에서 일하며 일본에 들어갈 준비를 함. 
  • 1939년(19세)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고학.
  • 1943년(23세) 와세다(早稱田)대학 전문부 문과 수학.
  • 1944년(24세) 3월, 조점봉(趙點鳳)씨와 결혼(1남 3녀를 둠). 상계 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해방 뒤 상경. 사업실패로 생활이 어려움.
  • 1945년(25세) 12월 장녀 호진(浩珍) 출생.
  • 1947년(27세) 9월.자녀 호정(浩貞) 출생.
  • 1948년(28세) 8월 백민지(白民誌)에 <번요의 거리>당선으로 등단. 10월. 삼녀 호영(浩英) 출생.
  • 1949년(29세) 백민지를 박연희(朴淵禧)와 공동편집. 어머니 별세. 
  • 1950년(30세) 단편<군상> <퇴근시간>을 발표. 국방지(國防誌)를 곽하신(郭夏信)과 공동편집.
  • 1951년(31세) 1.4후퇴 때 대구로 피난 창공(蒼空) 편집간사. 단편<피와눈물><여인의 노래><새로운 결심 ><신기루><부부서정><슬픈인연><불량소년>등을 발표.
  • 1952년(32세) 대구에서 신태양(新太陽) 편집에 잠여. 단편<절정> <영> <그는 살아있다> <호심> <엉터리 순찰행장기> <골목길> <학대 받는 사람들> <자매계보> <전가>  <심화>등을 발표.   
  • 1953년(33세) 제1창작집 ‘자매계보(姉妹系譜)' 간행. 단편<패배자> <역설> <애원> <포로와 산 시체> <여정여환> <기상도> <젊은 사람들> <시계와 달밤> <현대인> <광 상의 장> <명함 한 장>  < 수평선이 보이는 창>등을 발표.<포로와 산 시체>가 일역되어 일본문예지 신조(新潮)에 실림.1953년(33세) 
  • 1954년(34세) 서울로 올라와 전쟁 이전에 거주하던 인현동 집으로 복귀. 3월 장남 호창(浩昌) 출생. 장편 <바람 옥문을 옅라>를 신태양지에 연재. 단편<폐허의독백><잃어버린 눈동자><유랑>등을 발표. 
  • 1955년(35세) 단편 <산성의 거화><노염><유전 24시><인간 낙수><소설가 K씨의 행장><하일원정>등을 발표. 단편 <기상도> 영역 됨.
  • 1956년(36세) 비사교적 성품에다 술도 못마셔 늘 외로이 지냄. 단편 <인생은 서러워> <온전장 야화> < 암묵의 풍속><헐어진 여인상><인생을 불사르는 사림들><패륜아><권태>등을 발표. 
  • 1957년(37세) 단편<태양의 유산><허구의 종말><투정><하나의 생명><일각선생><접자><오늘과 내일> 등 발표. 
  • 1958년(38세) 동생 광현(光鉉)씨가 군 복무중 사고로 죽음. 이 사고를 소재로 단편 <오디 하나>를 쓰고 단편 <언덕을 향하여> <한일원정> <비정>등을 발표. 중편 <아버지와 연인>을 서울신문에 연재
  • 1958년(38세) 단편 <언덕을 향하여>로 제6회 아시아자유문학상 수상. 제2창작집 '태양의 유산’과 '바람 옥문을 열라' 간행. 
  • 1959년(39세) 서대문구 홍제동으로 이사. 단편<장씨 일가><노처녀> <과거에 사는 사나이> <풍속과 여심> <희곡사제>등을 발표.
  • 1960년(40세) 서대문구 홍제동 단독주택으로 이사. 신경쇠약으로 고생하면서도 창작활동 계속. 중편 <잃어버린 여정>발표. 장편 <분노의 강>을 부산일보에 연재.
  • 1961년(41세) 4· 19혁명을 다룬 단편 <밀고자><곤비>발표. 장편 <언덕은 폭풍설>을 서울일일신문에 연재 중 신문폐간으로 중단.
  • 1962년(42세) 단편 <백야><녹색의 회의><임진강><갈대꽃 필 무렵>발표. 장편 <너와 나의 시>를 부산일보에, <희극인간>을 매일신보에 연재.
  • 1963년(43세) 단편 <허>발표. 장편 <장미부인>을 한국일보에 연재. 장편 <분노의 강>을 <강 건너 정인들> 로 게제, 을유문화사에서 간행. 
  • 1964년(44세) 단편 <6인공화국><이 엄청난 집념>, 중편 <남한산성>밭표. 장편 <부계가족>을 국제신문에 연재. 민족의 통사를 실록대하소설로 형상화한<조선총독부>를 신동아지(新東亞誌)에 연재. 
  • 1965년(45세) 장편 <대원군>을 조선일보에 연재. 역사소설의 새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을 받음. 
  • 1966년(46세) 과로로 건강이 좋지 않음. 병중에도 단편 <삐에로><연기된 재판><우울한 여로><이 엄청난 비정>등을 발표. 장편 <녹수는 님의 정>을 서울신문에 연재.
  • 1967년(47세) 장편 <신부들> 부산일보에 연재. 인간과 집단사회의 관계를 웅대한 스케일로 형상화했다는 평가를 받은 <조선총독부> 전 5권과 <대원군> 전 3권이 출간되면서 문학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이 일음. 장편 <장미부인> 간행.1967년(47세) 
  • 1968년(48세) 장편 <조선총독부>로 제8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작부문 본상 수상. <조선 총독부> 국어판을 일본 강담사에서 간행. 장편 <백조 산으로>를 조선일보에, 실록대하소설 제2작 <대한제국> 을 신동아지에 연재. 장편 <대원군>을 전 5권으로 보완 간행. 장편 <전하들> 발표. 홍제동 집을 2증으로 신축(별세시 까지 2층 서재에서 주로 집필함). 일본문화계 시찰.   1968년(48세
  • 1969년 (49세) 인조반정을 소재로 한 <통곡>을 동아일보에, 장편 <군학도>를 서울신문에 연재, 단편과 현대 소설만을 집대성 한 <류주현전집> 전 6권과 <대한제국> 전 5권 간행.  
  • 1970년(5O세) 단편 <경자의 집> 발표 장편 <상아의 문>을 중앙일보에 연재. <류주현전집> 전 6권을 전 10권으로 보완 간행. 장녀 호진이 유선호(劉善鎬)와 결혼. 한국도서잡지 윤리위원, PEN클럽 한국 본부 중앙위원, 한국문협 이사.1970년(5O세)  
  • 1971년(51세) 장편 <욕망의 구택>을 여성중앙지에 연재. 장편 <신부들> <백조 산으로> 간행. 등산, 테니스 등으로 건강 회복. 일본여행.
  • 1972년(52세) 장편 <우수의 성>을 중앙일보에, <황녀>를 문학사상지에 연재. 단편 <잠보다 긴 꿈>을 현대 문학지에 발표. 자녀 호정이 작가 오인문(吳仁文)과 결혼. 
  • 1973년(53세) 20년간 주간으로 있던 신태양사 퇴임. 장편<파전무>를 중앙일보에, <대치선생>을 서울신문에 연재. <류주현 역사소설군 대전집> 전 10권 간행. 
  • 1974년(54세)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출강. 장편 <모계가족>을 주부생활에 연재. 단편 <파괴>를 현대문학에, <축생기>를 한국문학에, <배덕의 묘>를 월간중앙에 발표. 삼녀 호영이 서정겸(徐王謙)과 결혼. 한국소설가협회 창립 조대회장에 취임. 1974년(54세)
  • 1975년(55세) 3월,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교수취임. 장편 <인간군도>를 한국문학지에, <배덕 시대>를 매일신문에 연재. 단편 <독고선생> 밭표. 장편 <황녀>, 문고판 단편집 <남한산성>간행. 
  • 1976년(56세) 10월,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본상(대통령상) 수상. 계간지 일어판 한국문예(韓國文藝)지 주간. 장편 <금환식>을 중앙일보에 연재. 단편 <신의 눈초리> <연극연습> 발표. 장편 < 우수의 성> 문고판 단편집 <장씨일가> 간행. 장편 <파천무> <통곡>등을 추가하여 <류주현 역사소설군 대전집>을 전 15권으로 보완 간행. 1976년(56세) 
  • 1977년(57세) 제3기 문학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죽음이 보이는 안경>을 한국문학에, 단편 <어느 하오의 흔든>을 문학사상지에 발표. 제3창작집 <신의 눈초리>, 장편 <고요한 종말(원제 인간군도)>를 간행. 
  • 1978년(58세) 중편 <소복입은 묵시>와 단편 <슬픈 유희>를 문학사상에, 단편 <환상의 현장>을 문예중앙에, <0|제 어디로>를 한국문학에 발표. 첫 수필 칼럼집 <정 그리고 지> 장편 <황진이(원제 녹수는 님의 정)> <희한한신부들(원제 신부들)> <강건너 정인들>개판간행. 적추골절로 와병. 일제 집필 중지. 장편 <금환식> 미완성인 채 중앙일보 연재중단. 제4창작집 <죽음이 보이는 안경>을 문학사상사에서 간행. 문학생활 30년을 정리 <류주현 대표선집>전 12권(뒤에 15권)을 경미문화사에서 간행. 1978년(58세)
  • 1979년(59세) <조선총독부> <대원군> 개판 간행. 투병 계속.  
  • 1981년(61세) 병세가 호전되어 대학출강 등 일부 사회활동 시작.
  • 1982년(62세) 병세 악화로 서욜대 부속병원 입원. 5월 26일 홍제동 자택에서 숙환으로 영면. 경기도 여주군 가남면 태평리 선산에 묻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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